전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지닌 문화적인 부분을 잘 알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등장하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본 정도이지요. 사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이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제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보지 않아서 이 철도의 거리감을 모르고 한 소리입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멀다고 하는데 체험할 수 없으니 감이 잘 안 옵니다. 제가 도시에 살 때는 버스 몇 정류장 혹은 지하철 몇 개 역 정도가 감이 오는 거리였어요. 좀 외진 곳에 살고 이동 거리가 늘어나니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보다 규모가 더 큰 고속도로 나들목을 기준으로 한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어떤 목적지가 버스로 세 정류장 가면 있다고 말하듯이 고속도로 나들목 세 개를 지나야 거기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는 식입니다. 이처럼 거리감은 직접 몸으로 마주해봐야 느껴집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제가 직접 걷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열차가 주기적으로 덜컹거리는 소리와 진동 그리고 눈높이에서 지나는 창밖 풍경들을 통해 거리감을 몸으로 어느 정도 느꼈습니다. 정말 엄청난 규모이지요. 단순히 지평선이 보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열차는 침엽수림을 지나가서 지평선 같은 탁 트인 풍경을 볼 기회는 적습니다. 나무만 보이는 같은 풍경이 계속되지요. 하루 정도 변하지 않는 창밖을 보고 있으면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계속 같은 풍경이 지나간다는 사실에 두려워집니다. 저는 평소에 하루 종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넓은 규모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머리로는 시베리아는 넓으니 계속해서 같은 풍경이 지나갈 수 있다고 이해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의심이 지워지지 않지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두 연인은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난 뒤 대륙을 관통하며 만남과 해어짐을 반복합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두 사람의 사랑이 흩뿌려지는 매체가 바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지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옛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인천과 뉴욕을 오가는 연애도 있지만 제가 경험한 시베리아 위에서 관계가 이어지는 건 좀 다른 느낌입니다.
좀 다른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규모의 차이인 면이 큽니다. 한두 사람한테 일이백 사기 치면 잡범이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슈킹하면 “위대해” 보이는 거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평온한 환경에서 큰 규모가 아니라 정말 사람 살기 힘든 곳에서 큰 규모라는 이유도 있어요. 얼고 녹으면서 꿀렁이는 땅 위에 억지로 올려놓고 관리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철도에 두 발 딛고 사랑하는 건 비행기의 카펫이나 휴게소의 아스팔트 위의 사랑과는 애절함도 위태로움도 다릅니다.
이 철도를 부설한 기간은 뒤로하고 전철화하는 데만 70년이 넘게 걸렸다는 사실은 이 철도의 규모를 알려줍니다. 그 규모답게 지금도 역이나 큰 도시를 제외하고 철도 위에서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는 곳이 잘 없지요. 평소라면 마음속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았겠지만 이 철도 위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생각나는 말들과 궁금한 것들을 한 자 한 자 적어 놓고 휴대전화 신호가 잡힐 때 잽싸게 보내야 합니다. 메일을 보내는 동안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거의 동시에 옵니다. 제가 이전 역에서 보낸 연락을 읽은 그 사람이 보낸 답장이지요. 이 메일을 읽고 답장을 쓰기 시작할 즈음이면 열차가 출발하고 신호가 끊깁니다. 이제 신호가 잡히는 다음 역까지 몇 시간을 영락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을 두고 여러 말을 쏟아내니 서로 이야기가 엇갈리기도 하지요. 만약 오해라도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슴 졸이며 황량한 시베리아만 보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닥터 지바고」의 두 연인이 느낀 애끓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