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나는 철학과에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Summary: I learned how to read and write in philosophy classes.
철학과에서 뭘 배우냐는 질문은 참 많이도 들어봤다. 물리학과에서 물리는 배우는 것과 다르게 철학과에선 철을 배우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닌 것을 말하는 방식으로는 무언가 확정하기 참 어렵다. 토끼가 뭐냐는 질문에 사자도 아니고 개도 아니다는 말은 참이지만 전혀 쓸모없는 답변이다.
사실 토끼가 아닌 모든 걸 말하면 토끼가 확정된다. 엄지손가락을 설명할 때 제일 뚱뚱한 손가락이라고 말하지 않고, 소지도 아니고 검지도 아니고 중지도 아니고 약지도 아닌 손가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토끼를 설명할 때 문제는 우리가 토끼가 아닌 것을 전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 생각에 철학자는 우리가 전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탐구한다. 탐구 방법은 참 다양하다. 세계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믿고 정말 그대로 바라보고 서술하는 방법부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세계와 관련 있다고 믿고 언어를 분석하거나 세계 따윈 없다고 믿고 진상을 밝히려는 과격분자들도 있다.
철학과에서는 지나간 철학자들이 쓴 글을 보며 저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 그 생각을 누군가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따위를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적어보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한다. 앞서 말한 일은 모두 굳이 철학과에서 할 필요가 없는 일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철학과를 나왔지만 철학과가 꼭 필요한 이유를 대지는 못 하겠다.
하여튼 내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돌아보니, 읽고 쓰는 방법은 조금 배웠다고 본다. 다양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서 남의 말에 귀가 더 순해졌고,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여러 생각을 접한 경험을 해서 내 생각을 말할 때 남을 완전히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