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은 날 이런 곳에 있으면 다른 사람 말 들을 여유도 생길 거고 수다는 확실히 늘 겁니다. 거기에 노예까지 부리면 더할 나위 없지요. 아테네는 시베리아와는 확실히 다른 동네에요. 한겨울 시베리아에 아크로폴리스가 있다고 해도 그거 감상할 여유가 생길까요? 따듯한 곳에 가기 바쁠 겁니다.
시베리아 철도 위에서 아테네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시베리아 위에서 살기 위한 노력의 무게는 문짝을 열면 그대로 느껴진다고 말했어요. 매서운 추위를 막기 위해 문이 무겁고 아귀가 딱 맞아서 뻑뻑하기 때문이지요. 그에 비해 아테네는 문이랄 게 필요 없는 동네입니다. 1월인 지금도 거리에 식탁을 놓고 영업하는 게 보여요. 되려 해를 막을 걱정을 해야 하지요.
고대 그리스에서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등에에 비유되곤 합니다. 별것도 아닌데 사람을 성가시게 한다는 의미에요. 예컨대 방금 제가 적은 문장에서 의미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꽤 성가십니다. 의미의 의미라니요? 알 거 같으면서 말하기 어렵지요. 저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사실 안다고 생각해야 살 수 있기도 하지요. 내일 해가 뜨는 걸 알아야 오늘을 살지 모르면 뭔가 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저에게 등에와 같은 소크라테스는 네가 정말로 아는 게 뭐냐고 묻고 같이 생각해보자 합니다.
아무리 날 좋은 곳이라도 소크라테스처럼 등에 짓을 계속하는 건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남들 다 싫어하는데 혼자 잘난 맛에 계속하는 건 심신에 크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닌 이상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이름 기릴만한 일이고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알지도 못한 곳에 사는 제가 그를 알고 있기도 합니다.
등에 짓이 나쁘게 보이진 않습니다. 생각하고 살라는 건 영화 속 건달도 하는 말이에요. 어려워서 그렇지 생각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시베리아같이 잘못 생각하고 실천했다간 죽을 수 있는 실수에 대한 여지가 없는 곳을 생각하면 일단 남들이 사는 방식을 받아들이는 거조차 쉬운 게 아니에요. 시베리아에서는 자연이 밀고 들어오는 걸 억지로 막아내며 겨우 삽니다. 진보 없이 숨 붙이며 근근이 사는 게 무시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기후 말고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해봐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기반이 취약하니 부당한 대우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지요. 그런데 부당한 대우니 당장 항의해야 한다는 말이 당키나 할까요? 지금 일하지 않으면 내일 굶는 상황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울까요? 소송으로 그동안의 피해를 청구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승소하기까지 우리나라 민사소송에서 바랄 수 있는 건 법률구조공단에서 수임료를 가불 받는 방법 정도뿐이에요. 억울해서 소송한다고 법원에서 먹여주고 재워주지 않습니다.
저는 늘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의견에 끌렸습니다. 저에게 피부에 와 닿는 이익이 있기 전에도 그랬어요. 그냥 왠지 모르게 배운 사람 느낌이 났지요. 보수적인 의견은 그냥 싫었습니다. 같이 사람답게 살자는 건 좋은 말입니다. 이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다는 현실을 반영한 말이기도 해요. 저는 여기에 동의하고 우리가 좀 더 잘 살길 원합니다. 그러니 뭔가 새로운 시도를 말하는 정치적 입장에 긍정적이에요. 그런데 아테네와 시베리아를 비교해 보니 기존 걸 그대로 하자는 사람도 저랑 같은 동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멍청하거나 나쁜 의도가 있어서 기존 걸 그대로 하자고 말하는 게 아닐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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