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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철학과 졸업생의 로망 – 아테네·나폴리·로마 2: 철학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아테네에서 첫날에는 제가 어디에 왔는지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사태 파악이 되었습니다. 아테네! 소크라테스가 살던 곳에 왔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빼놓을 수 없지요. 제가 특별히 이 세 명에 홀린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 명 모두 철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러니 제가 자퇴하고 철학과에 다시 오게 된 데에는 이 철학자들의 역할을 무시할 순 없지요. 전공 서적 속에 나오는 아테네는 이미 폐허뿐일 걸 알지만 서둘러서 돌아볼 곳을 정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한편으론 아테네에 온 게 오두방정 떨 일은 아닙니다. 자주 들어서 한 번 와야 할 거 같은 아테네지요. 저에게 의미 없던 건데 남들이 다 하면 괜히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무슨 상을 받았다거나 전문가의 평가가 좋으면 괜히 좋은 거 같아요. 특히 내가 평소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말하면 괜히 한 번 더 찾아보게 됩니다. 아테네가 그렇습니다. 제가 되고 싶던 철학자들이 말하는 곳이지요. 내가 학부 동안 본 많은 글은 부정하든 긍정하든 고대 아테네와 관련이 조금씩은 있었다.

굳이 직접 오지 않아도 아테네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긴 해요. 요즘은 사진도 많고 심지어 가상현실로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에 오지 않아서 이해 못 할 내용이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공부한 것도 아니에요.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아테네를 대충 훑어봤을 뿐입니다. 책 한 권 빠르게 살펴본 노력이랑 같은 겁니다. 그래도 마냥 놀지만 않고 뭔가 했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제가 배운 서구는 그리스나 로마에 뿌리를 대려고 합니다. 그리스의 『일리아드』나 『오뒷세이아』를 필독서로 꼽기도 하고 로마의 양식을 따라 도시를 설계한 세력도 있어요. 로마의 선조 이야기 격인 『아이네이스』가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에 줄 대고 있으니 결국 제 머릿속의 서양은 그리스에 줄 대고 싶어 한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배운 서양에 그리스 문화 전반이 녹아 있었다면 아테네가 친숙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스크바처럼 아테네는 미묘하게 이질적이에요. 서구는 그리스 전체를 동경한 게 아니라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만 쏙쏙 빼간 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다른 식민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테네의 유물을 약탈한 걸 보면 닮고 싶은 만큼 잘 대우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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