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탱자 놀고먹는 내가 하면 비웃음 살 말을 좀 하고 싶다.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 한 아이와 교내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 아이는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똘똘한 생명공학과(혹은 바이오 뭐시기 학과) 학생이었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가 학교 건물들을 돌아보며 이런 걸 만들 때는 적어도 누구 손가락 하나는 절려 나갔을 거란 말을 무심코 했는데, 아주 측은한 눈빛으로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마 누군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정말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 아이의 표정이 더 끔찍했다. 권력자의 마음에 들지 않아 여차하면 목이 달아나던 시대보다야 지금이 훨씬 평화롭지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궂은일들이 없어진 건 아니다. 아마 궂은일은 더 생겼을 거다. 초가집 짓기보다 아파트 짓기가 더 위험한 일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하고 힘든 일을 누군가 해줬기 때문에 그 아이와 내가 느긋하게 과제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신의 삶을 받쳐주는 그런 일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 몇 번 드나들면서 이 기억을 상기했다. 내 생활은 공장에서 나온 물품으로 꽉 차 있다. 그런데 나는 시끄럽고 냄새나는 공장을 평소에 생각하지를 못했다. 공장 하면 반도체 공장이 생각났을 뿐이다. 더럽고 냄새 나는 이 공단을 돌아보며 나는 생활할 때 필요한 것들이 이런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나도 내 생활을 유지해주는 궂은일들을 잘 몰랐다는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하기에는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말한 것이다.
떨어짐, 깔림, 넘어짐, 부딪힘, 맞음, 끼임, 무너짐, 산소결핍, 화재, 폭발, 파열, 감전. 이 단어들은 안전보건공단이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사망의 발생 원인을 분류하는 말이다. 이 중에 내가 일상에서 경험해본 것은 넘어짐과 부딪힘 정도다. 다시 말하면 다른 원인은 잘 그려지지도 않는다. 사람이 끼어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7년에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하루에 3명꼴로 사람이 죽었다. 안 좋은 물질을 다루다 질병에 걸려 사망한 경우는 이 통계에서 제외다. 정말로 어딘가에 맞아 죽거나 깔려 죽거나 불타 죽은 것 같은 사고로 죽은 사람만 하루에 거의 3명이라는 말이다. 물론 손이 잘리고 다리가 사라지고 고막이 터지는 경우도 제외다. 재해자 수는 훨씬 많다. 사고로 인한 재해자 수는 80,665명이다. 통계를 합쳐보면 2017년에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벌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91,805명으로 하루에 250명꼴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보낸 지난 6분 동안 1명이 돈을 벌기 위해 죽거나 다쳤다.
우리에게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여력이 주어진다면 이 6분을 늘리는데 많은 부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