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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상

폴리티컬 콤파스

https://8values-ko.github.io/results.html?e=67.1&d=66.5&g=72.3&s=70.7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위 링크와 같은 설문에 처음 응해봤다. 정치 과목을 담당했던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에 폴리티컬 컴파스라는 설문에 답하고 갱지에 결과를 표시해오라고 하셨다. 결과지는 2차원의 좌표평면에 표시하게 되어 있는데 한 축은 정치적인 영역으로 독재부터 아나키즘까지이고, 다른 한 축은 경제적인 영역으로 공산주의부터 시장 자유주의까지다. 내 결과는 정치적으로는 아주 아나키즘으로, 경제적으로는 약간 공산주의로 치우쳐진 곳이었다. 30명 정도 되는 한 반에 아나키즘에 경도된 사람은 나뿐이었던지라 꽤 흡족했다. 간혹 “아나키”로 불리기도 했다. 그때부터인지 나는 정치적 선택을 할 때면 아나키스트 냄새가 나는 쪽에 섰다.

 

누군가 나에게 아나키스트라고 말해줬고 그게 마음에 든다고 되도록 아나키스트 쪽으로 향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나는 이론은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축을 만들고 내 위치를 살피는 건 앞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경제적인 축이 평등 지향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나왔으니, 투표 철이면 선관위에서 보내는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때,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것보다는 신자유주의에 우려를 나타내는 정당이나 후보의 글부터 읽거나 시장 만능주의자의 소개에 노력을 덜 기울이며 읽고 말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시장경제랑 거리가 멀다고 나왔으니 관련 후보나 정당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그 사람이나 상황을 직접 대하지 않고 “빨갱이니까” 혹은 “자본의 척후병이니까”같은 생각을 하고 무시하는 건, 갈등의 골만 팔 뿐이다.

 

심심해서 한 설문이었지만, 나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던 고등학교 때 결과가 상당히 탈색되었을 거라고 예상했다. 철학과에 오고 나서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설이나 번역은 아무리 허접한 것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선 아무리 잘 못된 선입관을 심어준다 하더라도 어떤 해설이나 번역은 어떤 내용을 소개해 준다. 서점에 갔는데 모든 책의 크기와 표지가 같다고 생각해보면 굳이 생각하고 고를 이유가 없다. 표지도 알록달록하니 예쁘고 띠지에 적힌 사기꾼 같은 수사 어구를 보고 나서야 무엇인가 생각하고 책을 열어보게 된다. 몹쓸 해설과 번역이 쓸모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실패한 길을 보여줌으로써 다음 공부하는 사람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일상에서도 이미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 건 쉽게 무시할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을 실행하고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내가 배운 바로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일을 벌이는 사람을 무척이나 어리석다고 단정 짓고 바라보는 건 실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세상이 책에서 배운 데로만 돌아가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문제는 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렇게 경험하고 나서야 그 문제를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게 된다. 그렇다 해도 나는 그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지 않았으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감정적으로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고, 그런 사람을 마주할 때면 순박하다는 평가를 내리곤 한다.

 

이렇게 생각했는데도 4가지 축의 결과가 온건하게 나오지 않은 건 “왜 때문일까”. 나는 온화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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