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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프레스코화

무기고를 나와 크렘린 안에 있는 성당을 둘러보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닿고 싶어서인지 대게 성당들은 높잖나? 그래서 성당을 볼 때면 높게 지은 것과 관련된 구조에 눈이 갔다. 기둥이나 보의 형태나 천장 혹은 아치 같은 것들 말이다. 구조는 처음 만들 때 그대로다. 만약 비틀어지거나 어디 하나가 빠지면 성당은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좀 중요한 부분이 빠지면 성당이 무너지기도 한다.
성당 안을 장식하는 모자이크는 성당의 구조 못지않게 오래간다.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재료들은 유리든 돌이든 겉과 속이 같다. 잘 마감된 검은색 돌의 표면에 상처가 나면 처음과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검은색이다. 그러니 모자이크는 바닥에 깔아 놓기도 한다. 그런데 그림의 칠은 두께가 거의 없다. 상처라도 난다 치면 사라져 버린다. 여지껏 성당에서 본 벽화는 대부분 색이 변하거나 일부가 떨어져 나가거나 심지어 고의로 덧칠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성당에 가면 벽화는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건물 외벽도 그렇고 러시아에 있을 때는 유독 칠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크렘린 안의 성당들을 둘러 볼 때도 뭔가 칠해 놓은 면들을 유심히 보았다. 성당 외부 비가 들어치지 않는 곳에 프레스코화가 있는 성당도 있고 모든 성당 내부는 규모가 큰 프레스코화로 채워져 있다. 프레스코화의 장점으로 보존성을 드는데 내가 여지껏 보았던 벽화와 비슷하게 시간의 흔적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꽤 괜찮았다.
프레스코화는 큰 규모를 이루기에 좋다. 모자이크는 프레스코화처럼 세부묘사나 다양한 색을 보여주긴 어렵다. 이 큰 성당 안을 아주 작고 많은 종류의 돌로 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규모가 있는 것은 눈에 잘 보이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 쉽다. 그림의 붓 터치니 색감이니 구도니 하는 것들은 어려운 이야기지만 크기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규모가 있어서 눈에 띄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눈에 거슬리는 조형물이 너무 크면 금세 철거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규모가 있으면 쉽게 철거하지 못하기도 한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기까지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아주 세세하고 잘 만들어진 손바닥 만 한 모자이크는 어디 부잣집 방구석에 귀중히 보관되다 사라져버릴 수 있지만 규모가 있으면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
어차피 모든 것은 끝이 있고 모자이크도 마찬가지다. 한 번 만들어 놓고 영원하길 바라는 건 아이가 사탕을 영원히 빨아 먹고 싶어 하는 꼴과 꼭 같다. 모자이크든 프레스코화든 시간이 흐르면 흐려지고 불행ㅎㄴ 사고로 소실되기도 한다. 심지어 이상한 방향으로 복원되기도 한다. 처음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간에 따른 마멸을 못 견뎌 하는 건 꼭 죽어야 하는 지 분수도 모르는 행태다. 그리고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어디 우리가 그것만 받아들이나? 지난 시간 동안 쌓인 비평이나 현재 영향력 있는 주장을 안경으로 끼고 바라본다. 그 작품과 내가 독대한다 쳐도 나는 이미 그 시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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