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오른지 5일째다. 노보시비리스크라는 큰 도시를 지나는 날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열차에 올라 처음으로 방음벽을 보기도 했다.) 내가 탄 칸에 블라디보스톡부터 모스크바까지 쉬지 않고 간 사람은 나와 차장 두 명뿐이었고 자리는 중간중간 비긴 했지만 거진 사람들이 있었으니 중간에 사람들이 많이 오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날은 그나마 오래 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렸다.
내 자리에서 복도 넘어 대각선 자리에 앉은 인상 선한 사람도 노보시비리스크 전에 있는 어떤 역에서 내렸다. 사실 인상만 선한 것은 아니고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열차에 탄 지 3일이 지났을 때 열차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내 침대를 적셨다. 이제 하다하다 못해 열차 천장이 빵구가 났다고 황당해하던 때에 내 자리에서 대각선에 있던 사람이 차장을 불러줬다. 차장의 처치는 2층 침대에 골판지를 고정하고 수건을 놓아 떨어지는 물방울을 막는 임시방편이었지만 그 뒤로 별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전에 차장은 돌아다니며 내려야 할 사람들에게 도착지가 다 왔음을 알려준다. 인상 선한 사람은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전에 1층 침대 상판을 들어 짐을 꺼내고 두꺼운 모피를 입고 테이블에 놓았던 먹을 것들을 정리했다. 차장에게 받은 침구는 반납하고 까는 이불과 덮는 이불을 접었다.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짐 싸는 것도 도와주고 배웅도 해줬다. 다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 한 명은 짐을 밖으로 들어줬다.
창밖으로 보면 차량 번호도 쓰여있지 않은 승차장에 사람들이 서 있다. 밖으로 나가면 추울 텐데 많은 짐을 열차에서 내린 뒤 담배 한 대 피고 쿨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국제공항 입국장이나 출국장 마냥 격하게 반기거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차가 노보시비리스크를 지나고 어떤 역에 멈추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떠날 채비로 분주했다. 많은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사람을 볼 가능성이 높아지는 일이긴 하다. 그리고 여행의 목적이 새로움을 겪는 데도 있다는 점에서 여러 사람이 오가는 것은 썩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이날은 유독 해어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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