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용산

후암동 남산 도서관 벽화

후암동_남산도서관 벽화

후암동 남산 도서관에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그려놓은 벽을 보았을 때 약간 부끄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테네 학당>이 그려진 장소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이 매일 같이 이 그림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산 도서관에서 벽화를 보고 느낀 부끄러움은 옷이나 간판에 말도 안 되는 영어가 쓰여 있을 때 간혹 느끼는 부끄러움과 비슷하다. 굳이 영어가 아니어도 된다. 요즘은 한글도 미려해져서 덜 하지만, 붓으로 쓴 것 같은 “콤퓨타 세탁”이라던가 “구판장”같은 간판을 보면 비슷한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조금 더 설명해보면, “에쿠스”에 한국어 번역어인 “말”이 쓰여 있다고 생각하면 드는 느낌.

외국인도 한글이 쓰인 옷을 선택해서 입고 다닌다. 낯선 글자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고 한국을 좋아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매일 보는 것은 질리니 가끔 새로운 것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일상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거나 선망하는 것과 관련된 물건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많은 덕후들이 같은 물건이어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을 더 비싸게 사지 않는가?

<아테네 학당>은 신선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그림이라고 말해진다. 저작권도 끝난 그림, 좋다면 여럿이 더 볼 수 있게 공공장소에 크게 그려 놓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교과서 한켠에 조그마하게 놓인 그림보다 이 벽화가 크기로만 보면 원본에 더 가까우니, 크기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더 좋다. 내가 느낀 부끄러운 감정은 잘 못된 거다.

이제 남은 것은 <아테네 학당>을 자주 접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로마인들이 읽은 “에쿠스”랑 라틴어를 쓰지 않는 나라에서 고급차의 이름으로 “에쿠스”를 선택했을 때 이 라틴어의 느낌은 분명 다르다. “말”과는 다른 느낌을 주니 “에쿠스”를 선택했겠지. 비슷하게 <아테네 학당>을 자주 접한 사람들이, 이 그림이 저 멀리 라틴어도 모르는 나라의 도서관에 그려질 정도로 엄청난 그림이라고 생각했을까? 지금 남산 도서관 벽에 모사된 그림을 바티칸 궁에 놓아도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