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창, 고급호텔>>은 고급호텔을 도구로 한중일 3국을 바라보고 비교한다. 1부 1장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지어진 데이코쿠 호텔을 다루는데 외국 자본이 아닌 자신들의 자본으로(45) 지극히 서양적인 건축물을 올린 게(54) 기억에 남는다.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서울을 다루는 1부 2장이 재미있어서 정리한다.
2장은 서울의 호텔을 다룬다. 조선의 주요 호텔은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철도가 생기며 신의주와 부산에 철도 호텔이 만들어 졌고(83) 서울역과는 거리가 있지만 철도호텔 격으로 조선 호텔이 건축된다. 허름한 차림 때문에 조선호텔 입장이 거부된 일본인 실업가는 화가 나서 조선 호텔 북쪽에 땅을 사들이고 곧 반도 호텔이 건축된다.(84)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생긴 국제관관광공사는 영빈관과 조선호텔 그리고 반도호텔을 관리했다. 당시 호텔 개발은 미국인에 초점을 맞췄다. 이때 계발된 첫 번째 고급 호텔 이름은 워커힐이다. 이 이름은 한국전에 참전한 월튼 워커 중장에서 따온 것인데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에 대한 고마움의 표지다.(87) 워커힐이 건축된 뒤 조선호텔도 재건축에 들어간다.(89)
고급 호텔 경영권은 정경유착을 잘 보여준다.(90) 국영이었던 워커힐과 영빈관은 각각 선경(SK)과 삼성에 넘어간다.(90) 영빈관을 가져온 삼성은 옆에 신라호텔을 짓는다.(91) 일본에서 식품 사업에 주력하던 롯데는 정부의 투자권유로 반도호텔을 사들인다.(91) 롯데 회장인 신격호는 롯데 호텔을 45층으로 짓고 싶었으나 여러 논란 때문에 37층으로 마무리된다.(93) (그리고 근처에 파리 봉 마르셰와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을 모방한 롯데쇼핑센터를 짓는다.(93)
롯데 호텔 건설 초기에 김수근이 등장하는 점은 흥미롭다. 반도 호텔과 조선 호텔 재건축은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의 도심 재개발 사업의 일환인데(89, 93) 김현옥과 김수근 하면 떠오르는 건 종로와 충무로를 잊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인 세운상가다. 또 김수근 하면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롯데는 일본 건축회사와 김수근의 공간건축에 일을 의뢰했지만 일본 화사와 의견 충돌로 공간건축은 롯데호텔 건설에서 빠지게 된다.(91) 만약 김수근의 롯데 호텔이 되었으면 명동 풍경은 어떻게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