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다녀온 우울한 여행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했던 사촌 양 씨와 난 그 뒤로 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뭐 늘 그렇듯 하루하루 꾸준히 뭐라도 했으면 뭐라도 되었을 텐데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가 되어버렸다. 우린 노량진에서 다시 만났는데 츄리링과 슬리퍼 차림이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내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길이도 되지 않는 좁은 4인용 탁자에서 피자를 먹고는 지난번 이야기를 잠시 이었다.
우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어제보다 더 최악인 오늘로 요약했다. 늘 오늘이 최악인 것 같았는데 다음날 눈을 떠 보면 더 한 상황에 마주했다. 우리가 스페인 국경으로 가는 첫날은 썩 최악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대륙의 서쪽에 있는 프랑스나 스페인은 같은 위도라면 우리나라보다 따듯하다고 알려 줬는데, 3월 중순 아침, 착륙하기 직전에 창밖은 설국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예약한 밤 기차는 날씨로 취소되었다.
그 뒤로도 늘 이제 최악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일은 많았다. 가볍게는 음식 주문에 실패하는 일이 종종 있다. 오래 걸어서 발이 거지꼴일 때도 있었고(양 씨는 발바닥과 발이 분리되었다)주말이나 오후에 가게 문을 모조리 닫는 불편한 상황이나 가고자 한 숙소에 머물 수 없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거의 여행의 막바지에 다가와서 그 동네의 주말을 느끼면서 이제 이렇게 여행이 끝나구나 했을 때 몇십 년만의 폭우가 내린 일도 있다.
오늘 최악이니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지금까지 일로 앞으로를 단정 지은 거다. 동전을 던져서 10번 앞이 나왔다면 다음에는 꼭 뒤가 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사실 동전이 10번 앞이 나온 것은 다음번 동전을 던질 때 어떤 의미 있는 영향도 주지 않는다. 비슷하게 지금이 바닥이라고 내일이 더하지 말란 법은 없다.
늘 최악이었는데 이 여행이 좋았던 이유는 뭘까. 기간도 비슷한 두 여정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에게 비교해볼 만한 문제다. 여러 번 최악 뒤에 최악을 겪었지만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두 여행의 큰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믿음, 그러니까 가능성이나 잠재성에 대한 희망 말이다.
요즘 버스나 지하철의 미디어에서 간혹 보이는 내용이다, 중년을 넘어서야 성공한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세상 살만하다고 말하는 선전들. 이런 선전을 사회에 불평불만 갖지 말고 좀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희망은 좋지 못한 거다. 그리고 떨어지는 주식을 계속 사들여 물타기 하다가 손절하지 못해서 폭삭 망하는 것을 보면 희망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마니로라도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일이 아닌 것은 그래도 내가 없지 않다는 생각 덕이다. 없음과 비교하면 가마니로라도 있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있음이 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충만하게 있으면 나쁜 마음 먹을 일도 없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악은 없음에서 올 거라는 망상이다.
어찌 되었든, 피자를 먹고 나선 우리는 무척이나 피곤하게 카페에 앉았다. 하필 주문하기 귀찮은 공차에 가서 당도와 얼음 양에 대한 심문을 받았고 당도와 얼음 양을 결정하라고 하면서 이를 표현할 단위는 왜 알려주지 않는지 투덜거렸기 때문에 더욱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분명 그날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했는데,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