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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만남

  모스크바 시간대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꽁꽁 얼어 있는 러시아의 강이 낯설지 않습니다. 낮에 잠을 안 자니 시간이 참 안 갔습니다. 여행이 끝나면 이 지루한 시간이 생각날 건 분명했어요. 그러나 전 다시 여행을 가면 이렇게 아쉬워했던 걸 까먹어서 저는 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아쉬워할 겁니다. 그 이유는 전 늘 소중한 걸 마주했을 때 하찮게 여기고 뒤늦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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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동행

    내일이면 모스크바에 도착합니다. 드디어 거지꼴을 참지 못하고 처음으로 면도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열차에서 씻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다행히 왠지 쓸모가 있을 거라는 촉이 와서 다 먹고 버리지 않은 견과류 캔을 바가지로 사용해서 머리를 수월하게 감았지요. 견과류 캔을 버리지 않은 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했는데 일상이 수월해져서 꽤 뿌듯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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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만남

    많은 사람이 떠난 자리는 곧 다시 채워졌습니다. 제 윗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침구를 정리하고 테이블을 만들어놨는지 아니면 윗자리 사람이 온 걸 보고 나서 테이블을 만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튼 새로 온 위층 사람은 제 앞에 앉긴 했지만 저를 향하진 않고 복도를 향하고는 손을 몸 밖으로 펼쳐 보이거나 머리를 감싸 쥐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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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헤어짐

  노보시비르스크라는 큰 도시를 지나던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습니다. 사실 제가 탄 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모스크바까지 한 번에 간 사람은 저와 두 차장뿐입니다. 모스크바까지 가는 동안 중간에 많은 사람이 오갔지만 한두 명이 내리고 다시 자리가 채워지고 하는 식이었기에 객실 안에는 늘 눈에 익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날은 눈에 익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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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스케치 1

[그림 25] 시베리아 횡단 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10초) 아침 창밖으로 첫날과 비슷한 풍경이 지나갑니다. 그나마 나무 종류가 조금 달라지긴 했습니다. 보이는 건물들도 소련의 영향인지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밖과 다르게 열차 안은 따듯합니다. 옆자리에서는 할배가 허리 아픈 할매를 치료하기 위해 눕혀 놓고 손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먹을 걸 가득 싼 봉지도 가벼워졌고 알파벳을 잘못 읽고 산 탄산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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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나와 같은 사람들

    모스크바 시간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지 3일이 지났습니다. 몽골 국경과 가까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입만 다물고 있으면 저와 비슷한 얼굴인데 러시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어요. 예전에 중국에 갔을 때도 제가 입다 물고 있으면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중국은 같은 동양이니 제가 중국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양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러시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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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나와 다른 위층 사람

    저는 예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니 열차에 얼마 동안은 때에 맞춰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테이블을 만들어 꼿꼿이 앉아 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위에 사람이 있으면 낮에 제 침대를 의자로 쓰니 이불을 걷고 테이블을 만들 수밖에 없었지요. 분명 처음에는 이랬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누워서 세 끼를 먹었습니다. 침대 방향이 열차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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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대학원생의 수기

“유학”

우선 유학하면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것이 떠오릅니다. 그다음으로는 선비가 떠오릅니다. 물론 제가 떠올리는 선비는 눈치 없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놀릴 때 쓰는 말이지요. 또 조선 시대에 현실과 관련 없어 보이는 제사 기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관료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지루한 이야기를 하는 선비나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예법에 골몰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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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과 대학원생의 수기

장래희망을 말하는 방법

장래희망을 언제 적어 봤더라? 장래희망을 생각해 본 건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진로 교양 과목 시간이 마지막이다. 심리 검사나 여러 직업 사례로 장래희망을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장래희망 칸을 채우는 행동이 강요에 의한 자백이었다면 신입생 때 장래희망을 고민한 건 학점을 흔드는 형사의 지능적인 신문에 어쩔 수 없이 응한 꼴이다. 두 경우 모두 내가 장래희망이 없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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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음식들

  열차가 출발하고 이틀 정도는 저랑 비슷한 생김새를 한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과 중국 근처인데 온통 백인만 보이는 건 좀 이상한 일이지요.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온통 백인인 이 열차 안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인 “도시락”이 흥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도시락”은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맛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제가 본 것만 여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