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예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니 열차에 얼마 동안은 때에 맞춰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테이블을 만들어 꼿꼿이 앉아 있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잠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위에 사람이 있으면 낮에 제 침대를 의자로 쓰니 이불을 걷고 테이블을 만들 수밖에 없었지요. 분명 처음에는 이랬는데 시간이 지나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누워서 세 끼를 먹었습니다. 침대 방향이 열차 진행 […]
[카테고리:]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음식들
열차가 출발하고 이틀 정도는 저랑 비슷한 생김새를 한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과 중국 근처인데 온통 백인만 보이는 건 좀 이상한 일이지요.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온통 백인인 이 열차 안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인 “도시락”이 흥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도시락”은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맛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제가 본 것만 여섯 […]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사람들

모스크바에 도착할 즈음까지 열차에서 눈에 익지 않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일층 침대에 사람이 누워서 자고 있는데 이층에 자리 잡은 사람이 툭 내려와서 탁자를 이용하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식겁 놀라곤 했습니다. 열차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평행하게 놓인 두 침대는 가운데 창 아래 탁자 하나가 있습니다. 머리를 복도로 하고 자지 않으니 탁자 쪽에 머리가 […]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객차

저는 모스크바행 99번 열차를 탔습니다. 99번 열차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이 되면 100번이 됩니다. 러시아의 철도 시스템에서는 번호가 작을수록 좋은 열차라고 해요. 한 자리 대 열차번호를 갖는 모스크바행 열차는 99번 열차보다 빠르고 시설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급하게 출발하느라 남아있는 표는 99번 열차뿐 이었습니다. 99번 열차 삼등 칸에는 두 명의 차장이 교대로 근무합니다. 상냥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할 […]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첫날

모스크바행 열차를 예매할 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역에서 체크인하고 열차표를 받는 방법과 열차표를 인쇄해서 제시하는 방법이지요. 저는 역무원과 마주치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서 표를 인쇄해 갔어요. 그런데 제 열차표를 보더니 차장이 절 들여보내 주지 않고 러시아어로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말합니다. 러시아어를 못 한다고 하니 러시아어로 더 뭐라고 하고 들여보내 줬는데 대충 눈치로 너는 […]
가장 가까운 낯섦 – 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

우리 동네는 전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시골이니까 우리 동네라고 하는 겁니다. 차로 20분 걸리는 장소를 서울에서는 우리 동네라고 하진 않지요? 하여튼 일제 때 수원에서 여주까지 이어지는 협궤가 있었지만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얼마 있지 않아 없어졌고 작년부터 표준궤 전철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몇 주가 지난 뒤 동네에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인천으로 간다는 사람에게 길을 […]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했습니다. 러시아 비행기는 북한 영공을 통과할 수 있어서 우리나라 비행기보다 빠르게 도착합니다. 새벽 비행기가 빨리 도착한다고 별다른 게 기다리고 있지는 않지요. 유리를 많이 사용했는데 난방도 빵빵하게 틀지 않아서 으슬으슬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건물을 원망할 시간만 늘 뿐입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곤봉을 뱅뱅 돌리며 건들거리는 경찰들이 보였습니다. 입국 심사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꽈 […]
출발: 여행을 시작할 때 기준이 되는 곳
나를 위해 남이 죽어줬다는 모티프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희생 모티프는 간혹 미담으로 뉴스에 나타나기도 하지요? 자식이 부모를 위해 혹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뿐 아니라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은 이야기도 간혹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나 이득이 없으면 남에게는 십 원짜리 한 장도 쓰지 않는 사화란 걸 체감할 때 남이 날 위해 희생한다는 […]
출발: D-1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샀으니 일단 열차가 출발하기 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야 합니다. 배편보다 싼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고 기차 출발 전 도착하는 가장 싼 항공권을 골랐습니다. 오로라는 단기예보뿐이고 비가 올지 안 올지도 출발 전에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제가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은 주기가 일정한 달뿐입니다. 어두우면 오로라가 더 잘 보일 거란 […]
출발: 여행의 이유들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정말 가고 싶었던 철학과입니다. 저는 잘 다니던 건축공학과를 4학기째에 그만두고 잠시 여행을 다녀온 뒤 수능을 다시 보았습니다. 학교에 새로 입학하니 어색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나서이기도 하지만 저와 동기가 된 이들은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했습니다. 더 많이 산 나는 뭐 했냐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철학과가 익숙해졌습니다. 마지막 학기는 읽어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도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