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치원에 다닐 땐 이모 집에 자주 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고 지하철을 타거나 시 경계를 넘어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서울에 내리면 엄마 손을 잡고 가게에 들러서 해바라기씨 하나를 사서 이모에게 가는 내내 하나씩 집어가며 먹었다. 가는 길에 놓인 보도블록은 아주 큼직해서 어린 내 보폭으로는 한 번에 세 개를 뛰어넘기 어려웠는데, 한꺼번에 많이 […]
[카테고리:] 일상
태어나서 처음 서브웨이에 갔다. 서브웨이는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다. 서브웨이가 국내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찾아봐야 할 일이지만 내 기억에 서브웨이가 새겨진 일은 파리에서 생겼다. 그런데 서브웨이에 들어가서 뭘 먹은 기억이 아니다. 눈 오는 날 오르세 미술관으로 걸어가는데 길 건너편 매장을 본 게 전부다. 결국 시간이 더 지나고 먹은 음식이 샌드위치였으니 엄청 맛있는 식사를 하려 서브웨이를 지나친 것은 […]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성적이 높은 학생을 모아 만든 우(優, superior)반이 있었다. 문과에서 성적 상위 30명 정도로 한 반을 만들고 이과에서도 그렇게 해서 총 2반이 있었다. 나머지 반은 어떻게 편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劣,inferior )반이라고 했다. 내가 속한 열반 아이들의 모의고사 성적이 제각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열반은 성적을 기준으로 나눈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교 측이라고 학교 명성과 직결되는 좋은 […]
밀레니엄 서울힐튼 뒷골목
밀레니엄 서울힐튼을 따라 서울역 쪽으로 내려갔다. 고급 호텔 주변이라고 특별난 풍경이 있진 않지만 남산을 바라보는 전면은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에 비해 후면은 잘 관리되고 있지 않다. 그래도 쓰레 기통 같은 더러운 걸 숨기려고 검은 천으로 반쯤 덮어둔 모습을 보니 방치된 공간은 아니다. 호텔 뒤를 염탐한 건 아니고 남대문 교회를 둘러보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나홀로 집에 […]
“나”, “무엇”, “누구”
사촌이 일본에 다녀왔다. 교토에 갔는데 근처 오사카에 들러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 몇 개를 찍어 보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내가 사촌에게 그를 소개 시켜줬다. 사촌은 뮤지엄 산에 있는 그의 건축뿐 아니라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건축도 몇몇 답사한 걸로 안다. 나는 서울에 있는 그의 건축인 재능문화센터도 들려보지 못했다. 참 멋쩍은 일이다. 안도 다다오를 처음 들은 건 […]
영락교회와 향린교회
영락교회는 명동성당 맞은편에 있다. 남산 터널을 지나면 규모가 큰 명동 성당에 시선을 빼앗겨서 그 반대편을 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에 거기 영락교회가 있을 줄은 몰랐다. 영락교회나 한경직 목사는 낯설지 않은데 이래저래 언론에 노출되었기 때문일 거다. 영락교회를 세운 한경직은 함경도 사람이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는데 반공이나 영어 그리고 개신교라는 세 단어로 대표할 수 있다는 설명은 적절한 것으로 […]
2호선 강남역 스린도어 열림 안내방송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기계의 몸과 인간의 뇌를 지닌 혼종이다. 나는 혼종이 아닐까? 라투르는 사회 속 개인을 인간과 비인간의 복합체로 본다. 벌거벗은 나폴레옹이 유럽을 휘젓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무기도 있고 말도 있고 옷도 있고 그래야 유럽을 돌아다니지, 어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벌거벗고 카리스마를 풍기지는 못한다. 좀 다르게 생각하자면, 자판기 안에 사람이 들어있든 정말 기계 자판기든 내가 […]
이번 「공각기동대」를 보고 #1
이번에 개봉한 <공각기동대>는 일본풍과 할리웃퓔을 이종교배한 결과물이다. 잡종이라는 것은 다분히 부정적인 말이다. 정부가 주도한 다문화 사회 아래서는 금기시되는 말인 뿐더러 짬짜면 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본래 잘 쓰던 두 개를 섞으면 원래 각각의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둘을 섞어서 더 불편해지기도 한다. 혼종인 <공각기동대>도 특별히 잘 섞이지 않았다. 자의식 과잉인 할리웃 슈퍼 히어로가 나올 법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