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논어>>를 샀다. 철학과에 다녔는데 <<논어>>를 전공 수업이 아닌 교양 한문 시간에 본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거 교양 시간에 봤으면 쭉 읽었으면 좋았을 걸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다 읽지 못한 것은 참담한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잘 팔리는 <<논어>>를 집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굳이 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열어보고 […]
#4
간에 문제가 생겨서 제 기능을 못 하면 남에게 간을 받기도 한다. 간은 어느 정도 재생이 되니 건강한 간을 뚝 띠어다 아픈 간을 좀 도려내고 이어 붙이면 죽어야 할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아무 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서로 잘 맞는 간이어야 한다. 잘 맞지 않으면 이식된 간이 썩어들어 간다. 26살의 여행과 […]
#3
각자 다녀온 우울한 여행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했던 사촌 양 씨와 난 그 뒤로 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뭐 늘 그렇듯 하루하루 꾸준히 뭐라도 했으면 뭐라도 되었을 텐데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가 되어버렸다. 우린 노량진에서 다시 만났는데 츄리링과 슬리퍼 차림이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내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길이도 되지 않는 좁은 4인용 탁자에서 피자를 먹고는 지난번 이야기를 잠시 […]
#2
우린 만나면 아직도 기분 좋게 산티아고로 걸었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사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행을 우리가 그렇게 열망한 것은 아니다. 처음 서로가 여행 갈 마음이 있었음을 확인했을 때는 산티아고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산티아고 향하게 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굳이 몇 가지 이유를 들자면, 내 친구가 산티아고에 대해서 말해줬고, 이미 코엘류가 <<순례자>>를 통해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에 […]
서랍 속에 처박혀있던 아두이노를 꺼냈다. 4년 전 여름에 드론을 만들어 보겠다고 사서 불 한 번 깜빡여보고 처박아두었는데, 그동안 하루에 조금씩만 아두이노에 관심을 가졌다면 진즉에 드론을 만들었 뿐 아니라 뭐라도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DJI에서 만든 마빅이란 드론을 보다가, 드론을 만들겠다던 생각이 다시 났다. 그래서 당시 샀던 LED 몇 개와 초음파 거리계, 그리고 실수로 산 너무 높은 […]
입학해서 졸업 전까지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신라호텔에서 투숙하고 조식 먹고 중간이나 기말고사를 보러 가는 것이었는데 끝내 하지 못했다. 날이 좋으니 신라호텔 오른편으로 잠실에 롯데가 새로 지은 건물이 보인다. 듣기로는 123타워라고도 하고 슈퍼타워라고도 하는데 뭐 나한테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저 높은 건물은 볼 때는, 정경유착이나 환경이나 이런 것을 떠나서, 저 건물 주인이 몹시 […]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기계의 몸과 인간의 뇌를 지닌 혼종이다. 나는 혼종이 아닐까? 라투르는 사회 속 개인을 인간과 비인간의 복합체로 본다. 벌거벗은 나폴레옹이 유럽을 휘젓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무기도 있고 말도 있고 옷도 있고 그래야 유럽을 돌아다니지, 어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벌거벗고 카리스마를 풍기지는 못한다. 좀 다르게 생각하자면, 자판기 안에 사람이 들어있든 정말 기계 자판기든 내가 […]
#1
우리는 동갑인 사촌이다.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난 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오래전까지 더듬어 보면,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기억이 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같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주말이면 한 번은 꼭 봤다. 우린 원래 알았던 느낌이다. 반 오십을 맞았을 때, 우린 각자 여행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사촌 양 씨는 […]
이번 「공각기동대」를 보고 #1
이번에 개봉한 <공각기동대>는 일본풍과 할리웃퓔을 이종교배한 결과물이다. 잡종이라는 것은 다분히 부정적인 말이다. 정부가 주도한 다문화 사회 아래서는 금기시되는 말인 뿐더러 짬짜면 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본래 잘 쓰던 두 개를 섞으면 원래 각각의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둘을 섞어서 더 불편해지기도 한다. 혼종인 <공각기동대>도 특별히 잘 섞이지 않았다. 자의식 과잉인 할리웃 슈퍼 히어로가 나올 법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