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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익숙함과 속단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오른 지 4일 째다. 창밖은 나무 종류가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늘 같은 풍경이 지나간다. 보이는 건물들도 소련의 영향인지 모두 비슷비슷하다. 밖과 다르게 열차 안은 따듯하다. 옆자리에서는 한 할배가 허리 아픈 할매를 눞혀놓고 고쳐보겠다고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 먹을 것을 가득 싼 봉지도 가벼워졌고 알파벳을 잘못 읽고 산 탄산수는 이제 어느 정도 맹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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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무시할 수 없는 작은 것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양 끝인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의 시차는 7시간이다. 열차를 타면 하루에 한 번은 시간이 바뀌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일주일 동안 매일 시계가 느려지는 것은 골때리는 경험이다. 하루에 한 번만 들어도 짜증 나는 아침 알람이 두 번 울릴 수도 있고 밥을 먹었는데 또 밥때가 온다. 어렸을 때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소설을 각색한 만화를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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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우발성, 가능성, 실존

새벽에 열차가 이르쿠츠크 역에 멈췄다. 나는 이르쿠츠크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 고등학교 세계지리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추운 장소로 소개되었고 가장 춥다는 대표 성질 덕분에 시험에도 자주 등장했다. 세계지리 선생은 수업에서 이르쿠츠크가 나올 때면 오줌 싸면 얼어서 기둥이 된다는 소리를 하곤 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이르쿠츠크를 지나간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러시아의 독특한 거소 신고 제도 때문에 이르쿠츠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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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모스크바 시간으로 블라디보스톡을 떠난 지 3일이 지났다. 몽골 국경과 가까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입만 다물고 있으면 나와 비슷해서 생김새의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중국에서도 입다 물고 있으면 중국 사람이 말을 걸기도 했지만 동양의 범주에 넣어보지 않은 러시아에서 이런 경험을 하니 정말 이상했다. 생김새가 같다고 한국어를 하고 한국인일 거라는 부당한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국적과 언어와 유전적 유사성은 전혀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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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관계

위 칸에 사람이 내리니 너무 편했다. 여태까지만 해도 나는 예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니 때에 맞춰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테이블을 만들어 꼿꼿이 앉아있고 저녁이 되면 다시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 앉아있는 것은 너무 힘들다. 좀 더 시간이 지나니 누워서 세끼를 다 챙겨 먹었다. 침대 방향이 열차 진행 방향과 같으니 편안하게 누워서 바깥풍경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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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유지와 개선에 대해

<<방법서설>> 3부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따라야 할 것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온건한 의견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데카르트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방법서설>>을 읽기 전에 초등학생을 독자로 삼은 <<만화 데카르트 방법서설>>을 읽었다. 여기서 데카르트가 병약하게 그려진 기억이 남아서이기도 하다. 나는 난방 잘 되는 열차 안에서 시베리아를 바라봤다. 기껏해야 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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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시베리아 횡단 철도 위에서 먹었던 것들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올라 삼 일째가 되니 나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탔다. 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톡은 바로 북한 위인데 그동안 온통 백인만 보인 것은 좀 이상하다. 그런데 이 온통 백인인 열차 안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인 “도시락”이 흥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다. “도시락”은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맛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내가 본 것만 여섯 가지 맛이 있다.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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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시베리아 횡단 철도 안의 사람들

열차에서 내릴 때까지 눈에 익지 않던 장면이 하나 있다. 1층 침대에 사람이 누워서 자고 있는데 2층에 자리 잡은 사람이 툭 내려와서 탁자를 이용하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볼 때마다 식겁 놀라곤 했다. 열차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평행하게 놓인 2층 침대는 창가 쪽에 탁자 하나가 있다. 머리를 복도로 하고 자지 않으니 탁자 쪽에 머리가 놓일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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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시베리와 횡단 철도와 「닥터 지바고」

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지닌 문화적인 부분을 잘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본 정도? <닥터 지바고>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뭐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건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거리감을 모르고 한 소리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멀다고 하는데 체험할 수 없으니 감이 잘 안 온다. 내가 도시에 살 때는 버스 몇 정류장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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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시베리아 황단 열차 내부 #2

삼등석은 침대 여섯 개를 한 조로해서 주욱 붙어있다. 두 개의 이 층 침대는 열차 진행 방향에 직각으로 서로 평행하게 놓여있고 그 가운데에는 창문과 작은 탁자가 있다. 서로 평행한 일 층 침대 두 개는 상부가 들리고 아래 칸에 짐을 넣을 수 있다. 이 층 침대 위는 이불이 놓인 선반이 있다. 나머지 하나의 이층 침대는 평행한 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