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하차

서울에는 서울 역이 있는 것과 다르게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이 없다. 모스크바에서 역 이름은 그 철도의 종착역 이름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처음에는 야로슬로블까지 갔기에 나는 모스크바에 있는 야로슬로블 역에서 내린다. 그런데 야로슬로블에도 야로슬로블 역이 있다. 내가 탄 열차는 야로슬로블 역에서 마지막으로 5분간 정차하고 4시간 동안 종착역까지 쉬지 않고 간다. 야로슬로블 역에 도착하기 전에 화장실도 가고 내복도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감자 퓌레를 나눔

사과 소년은 해가 어둑할 즈음 떠났다. 시간이 좀 더 시나고 위층 사람은 누워있었고 나는 마지막 남은 “도시락”을 먹었다. 이제 내일 아침에 인스턴트 감자퓨레를 먹으면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설국 열차에서 양갱같은 음식을 먹는 것에 비하겠냐마는 정말 인스턴트로 보낸 지난 시간과 좁은 3등 객실 거기에 추운 눈밭 위의 철도라는 점은 설국 열차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가방

예비군 훈련에 가면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다. 나보다 어린데 결혼한 사람이 한둘은 꼭 있는 것도 좀 어색한 일이지만 신기하게 어디서 정말 말 안 듣는 사람들만 골라 온 것 같다. 어칠어칠하며 동네에서 껌 좀 씹는 형님의 느낌을 풍기는 사람도 참 많다. 서바이벌 게임을 한다치면 더워죽겠는데 거추장스럽게 보호장구도 차고 하니 정말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사과소년

이제 모스크바 시간대에 들어왔다. 얼어 있는 강이 낯설지 않았다. 낮에 잠을 안 자니 시간이 참 안 갔다. 나중에 이 지루한 시간이 생각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아쉬움 조차 까먹어서 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거다. 졸업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철학과에 다닌 시간들이 흐릿하다. 철학과에 오기까지는 참 많은 고민을 했는데, 왜 오게 되었는지도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때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새로운 만남

많은 사람이 떠난 자리들은 곧 다시 채워졌다. 내 윗 자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침구를 정리하고 테이블을 만들어놨는지 아니면 자리를 찾는 사람이 와서 테이블을 만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튼 새로 온 사람은 내 앞에 앉았다. 나를 보고 앉지는 않고 복도를 향에 앉아서 손을 밖으로 펼쳐보이거나 머리를 감싸는 쥐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늘 그랬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헤어짐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오른지 5일째다. 노보시비리스크라는 큰 도시를 지나는 날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열차에 올라 처음으로 방음벽을 보기도 했다.) 내가 탄 칸에 블라디보스톡부터 모스크바까지 쉬지 않고 간 사람은 나와 차장 두 명뿐이었고 자리는 중간중간 비긴 했지만 거진 사람들이 있었으니 중간에 사람들이 많이 오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날은 그나마 오래 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렸다. 내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저녁 열차 풍경

시베리아에 오른 지 4일째가 되는 저녁에 열차는 이란스카야 역에서 22분 동안 멈췄다. 정말 짧게는 1분만 멈추고 길어야 5분이니 22분이면 정말 오래 서 있는 거다. 보통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거나 먹을 것을 사온다. 차장은 흔히 말하는 빠루, 그러니까 노루발을 들고 열차 차륜을 툭툭 쳐서 점검하고 도끼로 얼음을 제거한다.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나가기에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모스크바 시간으로 블라디보스톡을 떠난 지 3일이 지났다. 몽골 국경과 가까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입만 다물고 있으면 나와 비슷해서 생김새의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중국에서도 입다 물고 있으면 중국 사람이 말을 걸기도 했지만 동양의 범주에 넣어보지 않은 러시아에서 이런 경험을 하니 정말 이상했다. 생김새가 같다고 한국어를 하고 한국인일 거라는 부당한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국적과 언어와 유전적 유사성은 전혀 다른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유지와 개선에 대해

<<방법서설>> 3부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따라야 할 것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온건한 의견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데카르트가 유약하다고 생각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방법서설>>을 읽기 전에 초등학생을 독자로 삼은 <<만화 데카르트 방법서설>>을 읽었다. 여기서 데카르트가 병약하게 그려진 기억이 남아서이기도 하다. 나는 난방 잘 되는 열차 안에서 시베리아를 바라봤다. 기껏해야 역에서 […]

Categories
서른 살 사촌의 우울(서른살 여행기)

시베리아 횡단 철도 안의 사람들

열차에서 내릴 때까지 눈에 익지 않던 장면이 하나 있다. 1층 침대에 사람이 누워서 자고 있는데 2층에 자리 잡은 사람이 툭 내려와서 탁자를 이용하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볼 때마다 식겁 놀라곤 했다. 열차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평행하게 놓인 2층 침대는 창가 쪽에 탁자 하나가 있다. 머리를 복도로 하고 자지 않으니 탁자 쪽에 머리가 놓일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