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크렘린은 경복궁 같은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기능한다. 안에는 대통령 관저가 있다. 그래서 다닐 수 있는 동선이 제한되어 있고 길을 잘 못 들었다 싶으면 경비가 와서 더 이상 진입하지 말라고 막아선다. 무기고 전시 구역과 크렘린 안의 성당 구역을 둘러보면 남은 것은 몇몇 조형물과 전시들이다. 눈에 익지 않은 가구나 그릇들을 볼 수 있다. 또 전시실의 위치가 […]
[태그:] 속단
D-0
이제 모스크바까지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있어 중간중간 눈치를 보며 조용히 내 욕구를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다시 못 할 짓은 아니다. 이제 <<론리 플레닛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표지에서 본 풍경이 창밖에 나타난다. 모스크바에 가까워서인지 철도와 관련된 디자인이 회색 바탕에 빨간색 표시로 통일되는 것이 보였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
시작 즈음
철학과를 졸업했다. 정말 가고 싶었던 철학과다. 나는 잘 다니던 건축공학 전공을 4학기째에 그만두고 잠시 여행을 다녀온 뒤 수능을 다시 봤다. 학교에 새로 입학하니 어색했다. 나이 차이가 나서이기도 하지만 나와 동기가 된 이들은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했다. 나는 뭐 했냐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추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철학과가 익숙해졌다. 마지막 학기는 읽어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도 한 […]
오류 발견
나는 어제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올라 4일째에 견과류 캔을 버리지 않고 머리를 감았고 배터터리를 더 이상 충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일기를 더 살펴보니 터리를 충전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5일째이고 머리를 감은 것은 6일 째다. 날짜를 모호하게 써놓은 것도 아니고 4일 째라고 명확히 써놓고 5일과 6일째에 있던 일을 적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여기서 […]
익숙함과 속단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오른 지 4일 째다. 창밖은 나무 종류가 조금씩 변하기는 했지만 늘 같은 풍경이 지나간다. 보이는 건물들도 소련의 영향인지 모두 비슷비슷하다. 밖과 다르게 열차 안은 따듯하다. 옆자리에서는 한 할배가 허리 아픈 할매를 눞혀놓고 고쳐보겠다고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 먹을 것을 가득 싼 봉지도 가벼워졌고 알파벳을 잘못 읽고 산 탄산수는 이제 어느 정도 맹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