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 아저씨들과 점심을 먹은 뒤에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누군가 자신의 렉서스를 부쉈는데, 좋다고 사놓고 부신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이냐고 목수 아저씨 한 분이 말했다. 그러니 타일공 아저씨가 일본 현장은 쓰레기 하나 없다고 말했다. 미장 아저씨는 자신도 일본에 다녀왔다고 했고 타일공 아저씨는 일본뿐 아니라 리비아와 사우디도 다녀왔다고 했다. 미장 아저씨는 갑자기 리비아 어디에 있었냐고 말하면서 자신도 리비아에 다녀왔다고 말하면서 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타일공 아저씨는 80년대에 월급 50만 엔을 받고 일본에 갔다고 했다. 그때의 환율은 5:1이라고 한다. 눈을 다쳐서 2백만 엔에 합의를 했는데 한국에 오니 눈이 멀쩡해졌다고 한다. 양복을 차려입고 15일짜리 관광 비자로 입국한 다음 50만 원을 주고 불법 여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장공 아저씨도 비슷했는데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미장공 아저씨는 구슬(?)로 하는 빠칭코를 했고 타일공 아저씨는 구슬은 안 했다는 점이다. 타일공 아저씨는 월급을 받으면 “삥발이”라는 것을 했는데 일본 애들은 “뽀찌”(개평)도 주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두 분 모두 일본에 가기 전에 사우디와 리비아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모두 85년경에 사우디를 갔다가 돌아온 후 88년 즈음 리비아를 갔다. 일단 리비아 보다 사우디의 환경이 더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리비아는 물자가 부족하고 여가를 보낼 곳이 부족했다고 한다. 사우디에 가기 전에 조심해야 할 것을 교육받았는데 한 가지가 사우디 여자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고 파키스탄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타일공 아저씨는 18살에 연애를 한 뒤 19살에 딸을 낳았는데, 사우디에 가기 위해 준비하던 27살에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결혼식에 다가와서 전보가 왔는데 2일 후에 사우디로 출국하라는 내용이어서 급하게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 격으로 63빌딩을 보고 온양 온천을 들렸다가 사우디로 출발했다고 한다.
사우디가 환경이 더 좋았지만 두 분 모두 리비아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미장 아저씨는 동아 건설 소속으로 리비아에 갔고 타일공 아저씨는 대우 건설 소속으로 리비아에 갔다. 리비아에서는 동아 건설이 더 우대받았다고 한다. 트리폴리 공항에서 동아 건설 마크가 있는 옷만 입고 있어도 입국 심사가 쉬웠다고 한다.
미장 아저씨는 대수로 공사에서 관을 연결하는 미장 작업의 십장을 했다. 아래 10명의 태국인이 있었다고 한다. 리비아에서 뱀은 질리게 먹었다고 했다. 수로 공사에 쓰인 관은 해를 막아줘서 뱀이 모여들었는데 전기공 오 씨는 뱀을 무서워서 해서 태국인을 앞세웠는데 이 태국인은 양파망에 가득 뱀을 잡아 돌아왔다고 한다.
미장 아저씨는 현지 여자와 눈이 맞은 트레일러 기사에 대해서도 말했다. 당시 트레일러 기사들은 사우디에서 물자를 운반했는데 그 거리가 1200km였다. 그런데 어떤 젊은 리비아 여자가 트레일러가 출발하기만 하면 오매불망 누군가를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 트레일러 기사였다. 사실이 밝혀지자 그 동네는 뒤집혔다. 한국 관리자들이 노력했지만 결국 그 트레일러 기사는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리비아에서 살게 되었다.
타일공 아저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현지 여고생과 눈이 맞은 한국 경비 이야기를 했다. 군인들이 총을 메고 건설 현장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이 경우는 한국 관리자들이 미리 알고 그 경비를 출국시켰다고 한다.
타일공 아저씨가 일한 대우건설은 시급을 주었는데 추가 연장 시간을 50시간 이상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월당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여러 기공들이 대모도 했지만 현지 경찰력으로 제압당했다고 한다.
리비아에서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우체국에 예약을 해야했다. 리비아는 물자가 부족해서 스타킹이나 껌, 치약 같은 것이 뇌물로 쓰였다고 한다. 스타킹을 주면 예약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걸 수 있었다는 말이다.
또 대우 건설 소속 차량과 현지 차량이 사고가 나면 현지인들은 대우 르망으로 차를 바꿔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당시 르망은 리비아에서 아주 인기 있는 차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시골에 공사를 가면 마을 사람들이 중장비로 마당을 다져달라거나 하는 일이 있었는데 양 2마리 정도를 줬다고 한다.(이 부분은 미 군정기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또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리비아에 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함바집(공사장 식당)에 밥을 구걸하는 경우도 있었고 박람회에 가서 북한을 설명하는 북한 여자와 이야기했다는 말도 들었다.
리비아에는 할 것이 없어서 두 분 모두 바다낚시로 여가를 보냈다. 문어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엄청 질겼다고 한다. 타일공 아저씨는 동료와 문어를 잡아서 큰 문어는 20 디나에에 팔고 연한 작은 문어를 먹었다고 한다.
미장 아저씨는 미혼으로 리비아와 사우디로 갔는데, 기혼자가 갈 곳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지인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부인이 춤바람이 났다거나 바람이 났다거나 하는 것이다. 부인이 바람났다는 편지를 받아도 한국으로 바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 한다.
12시 46분이 되니 두 분 모두 일어나서 커피를 탔다. 미장 아저씨는 49분에 목수 아저씨와 업무 협의를 했고 타일 아저씨도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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